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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태어나 여덟살, 초등학교에 입학해 이제겨우 일주일이 되었을뿐인데,
"올해 초등학교 학생이되었어요~" 했던 알리프(가명)가 귀국했다. 3월 4일 한국어교실에서 맨 앞자리를 채웠던 아리프가족 모두 고국인 방글라데시로 떠나 버렸다. 4일 한국어교실에 엄마랑와 아빠랑 함께왔던 아리프는 올해로 8살이다. 오이도역앞 정왕4동에서 살았기에 가까운 초등학교에 입학하게 되었다. 입학 후 낯선학교로의 등교를 위해 아침마다 아버지와 손을 잡고 걸었던 아리프. 14일 아리프를 데리고 센터를 들어선 어머니 포프리(가명)씨의 얼굴이 매우 어두웠다. 이삼일전 사업장에서 일하던 아리프의 아빠가 출입국관리사무소 직원들에게 단속되어 인천으로 갔다는 것이다. 아리프의 아빠는 비즈니스 비자를 가지고 있었는데 제조업에서 일했던 것. 근로할 수 있는 자격의 비자를 갖지 못한 사람이 사업장에서 일했을 경우 보통 처음 단속된 경우라면 기간에 해당하는 벌금을 지불하고 나올 수 있었기에 처음엔 희망적으로 상담을 시작했다. 하지만 아리프의 아빠가 일하던 사업장의 사장과 통화해 보니 보다 복잡한 문제가 얽혀있었다. 사장이 출입국관리사무소의 조사과 직원을 만나본 결과 아리프 아빠의 여권이 위조되어 사용된 것이 밝혀진 것이다. 한국말을 똑부러지게 잘 했던 알리프, 알리프는 이 사건으로 일주일쯤 지난 후 엄마,아빠와 함께 방글라데시로 떠나야 했다. 임신중이던 엄마는 일을 할 수 없었기에 아빠 없이 아리프와 둘이서는 한국에서 살 수 없었다.
@3월 4일 한국어교실 개강식에 참석했던 아리프와 엄마
알리프는 방글라데시 국적이기는 하나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98년도에 입국했던 엄마와 함께 살면서 방글라데시에는 아직 가본적이 없다. 즉 국적은 방글라데시지만 알리프는 한국사람이었던 것이다. 그 아이가 방글라데시에서 낯선 삶을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참으로 안타까웠다.
알리프가 한국에서 살 수 있는 방법은 없었을까? 2006년말(9월부터 11월) 자녀를 한국 초등학교에 보낸 이주노동자의 경우 자진신고한 자녀와 부모에게 2008년 2월까지 출국 유예라는 합법화 조치를 결정했던 법무부의 한시적인 조치는 매년 발생하는 입학생들을 고려하지 않았다. 따라서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한 알리프였지만 부모님이 체류비자를 받을 수 있는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 알리프도 물론 마찬가지였다.
한겨레 2007년 3월 19일 뉴스에도 영광이의 엄마 체류 비자연장에 대한 기사가 났었다. 3월 16일 오전 서울시 목동 서울출입국관리사무소에서 스리랑카 출신 이주노동자 야무나(38)가 일시 보호기간 연장 신청서를 썼고, 이에 대해 법무부는 국내 체류기간을 6월19일까지 3개월만 연장하기로 했다고 한다. 따라서 야무나는 내년 2월28일까지 국내에서 체류가 가능한 아들 하영광(7)군, 남편 하산타(34)와 헤어지게 돼었다는 안타까운 소식이다.
매년 입학생들 발생되는 현실에 대한 추가 합법화 조치 여부에 대해 법무부 체류정책담당자에게 문의하니, 그의 답변은 2006년말 이후 이러한 조치에 대해 고려하고 있지 못하며 앞으로 정책에 고려할 예정도 없다고 일축했다.
경기도는 2006년 안산시와 시흥시에 각각 미등록이주노동자 자녀들을 위한 특별반까지 개설했었다. 하지만 담임을 맡아 직접교육했던 교사는 아이들의 부모가 체류비자가 없어 부모상담을 하기도 어렵고 아이들의 결석도 잦아 안정적으로 교육하기 어렵다고 했었다.
경기도나 각 시군에서는 이주노동자를 포함하는 이주민을 위해 올해도 많은 서비스를 계획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일들은 법무부의 체류정책이 뒷받침되지 않는한 대상자들에게 큰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다.
하루 빨리 법무부가 이런 현실을 파악하고 이주노동자를 포함한 미등록 이주민의 합법화에 대해 안정된 체류정책을 제공하여 또다른 알리프와 영광이가 생기지 않도록 해주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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